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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사회에서 전문경영인의 부재는 오랫동안 반복되어온 구조적 문제다. 재벌 중심의 경제 시스템과 승계 문화, 신뢰 기반의 조직 운영 방식이 맞물리며 기업 경영에 있어 ‘전문성’보다 ‘혈연’이나 ‘사적 관계’가 우선되기 일쑤였다. 본 글에서는 ‘우리는 왜 전문경영인이 없을까’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그 원인과 한계, 그리고 변화의 가능성을 탐색해 보고자 한다.

    전문경영인을 꺼리는 구조적 이유

    한국은 1960년대 이후 고도성장기를 거치며 대기업 중심의 경제 체제를 빠르게 정착시켰다. 이 시기, 창업자들은 직접 경영에 뛰어들어 기업을 일군 후 자연스럽게 2세·3세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는 ‘가족경영’ 체계를 강화했다. 이 과정에서 기업의 지속가능성보다 ‘소유’와 ‘경영’이 동일시되는 문화가 뿌리내리게 됐다.

    전문경영인이 일시적으로 임명되는 경우가 있어도, 이들은 오너 일가의 의사결정 아래 제한적인 역할에 머무르곤 한다. 특히 주주총회나 이사회에서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사회 중심 경영’이 아닌 ‘오너 의존 경영’이 굳어져 있다. 이는 전문경영인에 대한 신뢰 부족, 혹은 오너 경영자들의 권력 유지 욕구와 직결되며, 경영 전반에 걸친 구조적 개선을 가로막는다.

    결국 한국의 기업 문화는 전문성과 경영성과보다 ‘관계 중심’의 인사가 우선되는 경우가 많으며, 이러한 조직 구조 속에서는 실력 있는 전문경영인이 자리잡기 어렵다는 비판을 받는다.

    성과와 리스크, 책임의 비대칭

    전문경영인의 부재에는 ‘책임과 권한의 불균형’이라는 문제도 자리하고 있다. 경영인은 회사의 실적과 리스크에 대한 책임을 지지만, 실질적인 권한은 제한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한국 기업이 전문경영인을 신뢰하지 못하거나, 오너 일가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다.

    반면, 전문경영인이 성과를 내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보상은 제약적이다. 이는 ‘성과 중심의 인센티브 구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이로 인해 유능한 인재들이 경영에 도전하거나 장기적으로 기업에 헌신할 동기를 갖기 어렵다. 글로벌 기업처럼 전문경영인이 회사를 수십 년간 이끌며 브랜드의 신뢰를 축적하는 사례는 한국에선 드물다.

    또한, 사회적으로도 실패한 전문경영인에 대한 ‘낙인’은 매우 강하다. 실패에 관대하지 않은 기업 문화는 도전보다 보신을 유도하며, 결국 경영 혁신이나 리더십 전환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악순환이 반복되며 전문경영인의 설 자리는 점차 좁아지고 있다.

    변화의 흐름과 가능성은 있는가

    그렇다면 한국에서 전문경영인의 시대는 영원히 오지 않는 것일까? 최근 몇몇 기업에서는 변화를 위한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 오너일가가 한발 물러서고, 외부 출신 전문경영인을 중용하거나, 이사회 중심의 거버넌스를 구축하려는 노력이 그 예다.

    특히 ESG 경영, 글로벌 확장, 신사업 진출 등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총수의 결단’보다는 ‘전문가의 전략’이 요구되고 있다. 이는 기업 내부에서도 ‘책임 있는 경영’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음을 방증한다. 또한, 투자자와 소비자들 역시 기업의 투명한 운영과 전문성 확보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경영진의 자질과 리더십을 평가 요소로 삼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은 느리지만 분명 존재한다. 전문경영인이 실패하지 않고 성공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조건은, 기업 구조의 혁신과 사회 전반의 인식 개선이라는 두 축을 필요로 한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 장기적 안목의 보상 시스템, 실패에 대한 관용 등이 그 기반이 될 것이다.

    한국에 전문경영인이 필요한 이유

    전문경영인의 부재는 단순한 인사 문제를 넘어, 한국 경제 전체의 구조적 한계로 이어진다. 혁신과 투명성이 생명인 글로벌 시장에서, 오너 위주의 밀실 경영은 점점 경쟁력을 잃어간다. 지금 한국 기업에 필요한 것은 창업자의 리더십을 계승하면서도, 전문성과 전략을 기반으로 회사를 이끌 수 있는 리더십 전환이다.

    결국 ‘우리는 왜 전문경영인이 없을까’라는 질문은, 한국 사회가 가진 경영 문화의 본질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전문경영인이 자리를 잡을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 기업 구조, 그리고 인식 변화가 병행될 때 비로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이 보일 것이다. 그러한 전환의 시작은 바로 지금부터일지도 모른다.